「하시시」/ 안현미/ 『문학동네』2001 당선작 中
하시시
바람이 분다
양귀비가 꽃피는 그녀의 옥탑방
검은 구두를 신은 경찰이 어제, 다녀갔다
하시시 웃고 있는 여자
환각을 체포할 수 있는 영장은?
검은 구두를 신은 경찰이 오늘, 다녀갔다
사랑은 떠나지 않아도 사내는 떠났다
하시시 울고 있는 여자
검은 구두를 신은 경찰이 내일, 다녀간다
하시시 피어오르는 향기
그림자를 체포할 수 있는 영장은?
마리화나 같은 추억
하시시 바람이 분다
아편과 같아 사내는,
중독을 체포할 수 있는 수갑은?
그녀의 옥탑방
하시시
양귀비꽃 붉다
[감상]
'하시시'라는 말, '웃다'를 받쳐주는 사전적인 부사가 아닙니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인도대마초 마약 이름이더군요. 이 시 '하시시 웃고 있는 여자'의 내력은 슬픈 음악처럼 인상이 남습니다. 맨 처음부터 '사내'와 '마약'이 그녀를 길들인 것은 아닐텐데, 이제는 사내도 경찰도 떠나간 옥탑방에 홀로 남아 하염없이 웃고 있는 것이 왜이리 쓸쓸해 보일까요. 어쩌다 '하시시'가 보통 통용되는 여자의 웃는 수식어가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하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