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으로 새들이 걸어간다』/ 여림 / 작가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
종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근데 손뼉을 칠 만한 이유는 좀체
떠오르지 않았어요.
소포를 부치고,
빈 마음 한 줄 같이 동봉하고
돌아서 뜻모르게 뚝,
떨구어지던 누운물.
저녁 무렵,
지는 해를 붙잡고 가슴 허허다가 끊어버린 손목.
여러 갈래 짓이겨져 쏟던 피 한 줄.
손수건으로 꼭, 꼭 묶어 흐르는 피를 접어 매고
그렇게도 막막히도 바라보던 세상.
그
세상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는 울었습니다.
흐르는 피 꽉 움켜쥐며 그대 생각을 했습니다.
홀로라도 넉넉히 아름다운 그대.
지금도 손목의 통증이 채 가시질 않고
한밤의 남도는 또 눈물겨웁고
살고 싶습니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 있고 싶습니다.
뒷모습 가득 푸른 그리움 출렁이는 그대 모습이 지금
참으로 넉넉히도 그립습니다.
내게선 늘, 저만치 물러서 저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여,
풀빛 푸른 노래 한 줄 목청에 묻고
나는 그대 생각 하나로 눈물겨웁습니다.
[감상]
여림 시인의 유고시집, 그의 숨결이 문장 행간 행간마다 새어나옵니다.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던 그가 그 후 단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않은 채 2002년 겨울 남양주 어느 아파트에서 죽기까지, 뜨거웠지만 외로웠던 청춘의 무늬가 그 활자입니다. 시인은 떠났지만 그의 영혼은 살아서 살아내고 있는 우리를 머무는 것만 같습니다. 잠시,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