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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질 - 장인수

2003.11.26 11:51

윤성택 조회 수:1123 추천:160

「못질」/ 장인수 / 『시작』 2003년 겨울호



        못질


        새로 이사온 집엔
        이미 온통 못질 투성이다
        이쪽 저쪽 묵은 못을 빼 보니
        강건한 못의 등이 굽어 있었고
        녹슨 쇳가루가 와르르 쏟아졌다
        내 손금도 저와 같이 부식되어 있을까
        못이 되어 살아온 내 등뼈가 보이는 듯 했다
        새 못을 박는다
        틈을 넘어 온 집안의 벽면이 쩌렁쩌렁 울린다
        남편의 벽이 되어 살아온 아내여
        아내가 있어도 삶은 근원적으로 외롭다며
        내가 방랑끼로 허물어질 때마다
        벽이 되어 바람을 막아주던 아내여
        댕겅! 망치의 헛손질
        손뼈가 저려오는 뜨거운 손맛
        나는 아내의 젖무덤 속에 내 손을 집어넣고 싶어졌다
        벽에 가족사진 액자를 건다
        사진의 뒷면에 서리는 어둠이 액자를 뜨겁게 붙든다
        아내는 어둠과 얼마나 내통했던 것일까
        아내의 웃는 목젖은 알전구가 되어
        입가로 잔잔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
        아내는 상처 많은 집이었구나
        송곳덧니 환한 아내여



[감상]
이사를 와서 새롭게 못질을 하며 아내와 삶을 돌아보는 시선이 재미있습니다. 몇 가지 사건들이 이어지는 흐름도 흐름이지만, 그 고비마다 윤기 있는 직관도 좋고요. '남편의 벽이 되어 살아온 아내'라든지, '아내의 웃는 목젖은 알전구가 되어/ 입가로 잔잔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가 그러합니다. 이렇듯 좋은 시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을 일깨워주며 삶을 좀더 높은 경지로 이끌어줍니다. 오랜만에 만난 따뜻한 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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