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별」/ 박후기 / 창작과비평 2003년 겨울호
움직이는 별
이삿짐을 꾸린다
좀더 넓은 집을 원했으므로,
나는 차갑고 어두운
우주 저편의 저밀도 지대를 향해
짐 실은 트럭을 몰고 간다
도시가 팽창을 멈추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불러오는 풍선의 표면에 들러붙은 티끌처럼
우리는 점점 서로에게서 멀어져가고,
변두리의 버스 종점이 市 경계를 넘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듯
젖은 눈망울 반짝이는 어린것들을 이끌고
더욱 깊숙한 어둠속으로
나는 달려간다
뒤돌아보면, 불 꺼진 내가 살던 집
눈 감은 창문이여 안녕
나는 이제 더이상
처절한 고양이 울음소리에도
잠든 네 몸을 흔들어 깨울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호롱을 떠난 불빛과 같고
다만, 검은 그을음 같은 구름만이
뒤돌아보는 별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가린다
나는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어둠속에서 살아가는 일이
멀어져가는 별들의 뒷모습처럼
보일 듯 말 듯 위태롭게 빛날 지라도
[감상]
살아가면서 세간의 짐이 하나씩 늘고, 또 아이가 생기고 하다보면 좀더 큰 공간을 위해서 외곽으로의 이사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 시는 그런 심경을 잔잔한 우주적 상상력으로 비유해냅니다. 도시를 우주의 팽창으로 바꿔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시인만의 직관인 셈입니다. 어둡고 캄캄한 우주의 끝자락 어딘가로 이동하다보면 간간이 보이는 항성들이 저녁불빛을 내건 이웃이란 사실. 다시 우주의 중심으로, 도심으로 갈 수 있을지 약속 할 순 없지만 세월 내내 촘촘히 박힐 통장 속 숫자처럼 아득할지도 모릅니다. 눈감은 창문이여 안녕, 덜컹덜컹 짐 실은 트럭이 우주 밖으로 밀려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네 삶 하나하나가 어떤 궤도 위에 놓여진 것만 같습니다. 이 시대에 서정시를 쓸 수 있는 감성을 가진 시인이 몇이나 될까 싶다가도, 이 시에게서 안도를 느끼는 건 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