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의 나이테」/ 복효근/ ≪시와정신≫ 2003년 가을호
연어의 나이테
잘라놓은 연어의 살 속엔
나이테 무늬가 있다
연하디 연한 연어의 살결에
나무처럼 단단한 한 시절이 있었다는 뜻이리라
중력을 거부하고 하늘로 솟구치던 나무를
눈바람이 주저앉히려 할 때마다
제 근육에 새겨 넣은 굴렁쇠같이 단단한 것이
나무의 나이테이듯이
한사코 아래로만 흐르려는 물길을 거슬러
폭포수를 뛰어넘는 연어를
사나운 물살이 저 바닥으로 내동댕이칠 때마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솟구쳐
여린 살 속에 쓰라린 햇살이 짱짱한 나이테로 쌓였으리라
켜놓은 원목의 나이테가
제가 맞은 눈바람을 순한 향기로 뿜어내놓듯이
그래서
연어의 살결에선 강물냄새가 나는 것이다
죽은 어미연어의 나이테를 먹은 치어가
폭포수를 뛰어넘어
다시 그 강에 회귀하는 것은 다 그 때문이 아니겠는가
[감상]
가끔씩 횟집에서 보게 되는 연어의 결을 나이테로 보는 것이 흥미롭지요. 이렇게 좋은 시는 상식을 깨고 그 무너진 곳에 새로운 의미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게 발견이고 참신함인 거겠고요. 이 시는 '쓰라린 햇살'이 박힌 연어의 회귀본능을 되짚으며, 각인(刻印)의 의미를 되새김합니다. 제 어미의 죽음을 기억하며 또 다시 강으로 내려가는 새끼연어들. 그리고 되돌아오는 3∼4년의 긴 여정이 제 몸의 결무늬로 감겨 있을 법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