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장인수/ ≪빈터≫ 2003년 동인지
폭설
하늘의 언어들이 쏟아진다
백 리 넘어 도시에 살고 있는 애인에게
핸드폰을 쳤다
여기는 들판 한가운데야
하늘의 언어들이 들판으로 쏟아져 들어 와
무차별적이야
어떤 차별도 없이 쏟아져
하늘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랑한다는 말
무색하구나
저돌적으로 퍼붓는 하늘의 언어 앞에서
사랑한다는 우리의 속삭임은
무의미하다
들판을 다 덮어버리고
그칠 기미 없이
쌓이고 또 퍼붓는 하늘의 적설량 앞에서
지상의 모든 언어들은
무색하다
[감상]
지금 밖은 눈이 대책없이 내리고 있습니다. 적설량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달콤한 은유입니다. 이 시는 '눈'을 '언어'로 바꿔내면서 대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게 하는군요. 아마도 사랑보다 더 큰 의미에서의 폭설이겠지요. 무색(無色)의 두 가지 의미를 '눈'의 이미지로 바꿔내는 솜씨 또한 맛깔스럽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당신을 위해서 눈이 내렸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언어를 받아적을 여유도 주지 않고 그쳐버려 야속하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