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2」/ 조동범 / 《시와사상》 2004년 봄호
편의점·2
― 어느 심야의 인질극
그는 차분하게 칼날을 겨누고 있다.
쇼윈도 너머를 살피는 그의 눈은 피곤을 담고 있다. 무성영화처럼
고요한 밤, 냉장고 안의 식료품은 느리게 부패하고 있는 중이다. 그
의 칼날은 차분하게 인질의 목을 겨누고 있다. 쇼윈도 너머에서 총
구가 고요하게 빛난다. 자신을 겨누고 있는 총구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갑자기 허기를 느낀다. 그는 손을 뻗어 냉장고의 샌드위치를
집어 든다. 차갑게 빛나는 식욕, 허기를 채우는 손이 우수수, 떨린
다. 쇼윈도 너머에서 쏟아지는 불빛이 잘게 부서진다. 그는 불빛을
헤집으며 누군가를 찾고 있다. 어머니도 없는 인질극. 그는 눈물을
흘린다. 떨리는 그의 손끝이 인질의 목덜미에 상처를 만든다. 인질
은 공포에 떨며 흐느낀다. 그들은 허둥대며 흔들리고, 쇼윈도 너머
를 더듬는 그의 눈은 총구를 붙잡는다. 그는 어둠을 관통하는 총알
을 발견한다. 총구를 떠난 총알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날아오고 있
는 중이다. 어둠을 뚫고, 느리게 날아온 총알은 이내 그의 몸에 동
굴처럼 길고 캄캄한 흔적을 남긴다.
샌드위치가 툭, 그의 발치로 떨어진다.
[감상]
단편영화를 보듯 이 시는 시각을 아우르는 감각적인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놀라운 것은 '총구를 떠난 총알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날아오고 있는 중이다'라는 시간을 늘이는 힘에 있는데, 시공간을 이처럼 자유자재로 재해석해내는 상상력은 이 시를 탁월한 경지에 올려놓습니다. 영화 매트릭스가 홍콩 느와르 총알에서 진일보했듯, 고만고만한 시인들 사이에서 조동범 시인이 독특하고 참신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 싶습니다. 편의점과 배스킨 라빈스, 이런 도시적 공간에서의 삶을 모색하는 감각적인 신세대 시인입니다.
그래, 나도 신세대이던 때가 있었는데......
근데 성택아, 시창작 강의 월요일 6시 30분부터 있는 거니? 언제 한번 놀러갈게. 졸업하고 나니까 왠지 허전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