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가구 - 도종환

2004.03.31 11:44

윤성택 조회 수:1313 추천:223

「가구」 / 도종환 / 《작가세계》2004년 봄호


        가구
        
        아내와 나는 가구처럼 자기 자리에
        놓여 있다 장롱이 그렇듯이
        오래 묵은 습관을 담은 채
        각자 어두워질 때까지 앉아 있는 일을 하곤 한다
        어쩌다 내가 아내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내의 몸에서는 삐이걱하는 소리가 난다
        나는 아내의 몸 속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무엇을 찾으러 왔는지 잊어버리고
        돌아 나온다 그러면 아내는 다시
        아래위가 꼭 맞는 서랍이 되어 닫힌다
        아내가 내 몸의 여닫이문을
        먼저 열어보는 일은 없다
        나는 늘 머쓱해진 채 아내를 건너다보다
        돌아앉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아내는 방에 놓여 있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내 그림자와 함께
        육중하게 어두워지고 있을 뿐이다
        


[감상]
아내와의 관계를 가구를 통해 절묘하게 드러낸 시입니다. 이처럼 시란, 무언가에 감정을 빗댈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이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또 이 시가 보여주는 알레고리는 침묵에 익숙해진 중년부부의 관계를 보여준 것도 있지만, 性적 은유도 포함되어 있는 듯 싶습니다. 고개 숙인 가구의 그림자가 내내 잔상으로 남는군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71 단풍나무 한그루의 세상 - 이영광 2003.10.23 1233 159
970 정류장에서 또 한 소절 - 최갑수 2007.02.27 1307 159
969 아지랑이 - 정승렬 2002.04.01 1198 160
968 공중의 유목 - 권영준 [1] 2003.02.04 888 160
967 생선 - 조동범 [1] 2003.03.21 1166 160
966 경비원 박씨는 바다를 순찰중 - 강순 2003.04.30 938 160
965 못질 - 장인수 2003.11.26 1123 160
964 미싱 - 이혜진 2004.07.12 1132 160
963 바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 조용미 2004.07.13 1279 160
962 스며들다 - 권현형 2004.08.04 1396 160
961 2007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3] 2007.01.04 2019 160
960 남해 유자를 주무르면 - 김영남 2011.04.06 1824 160
959 뻘 - 유지소 2002.12.13 954 161
958 뿔에 대한 우울 - 김수우 2002.12.24 895 161
957 증명사진 - 김언 2003.01.10 1163 161
956 달밤에 숨어 - 고재종 2003.04.03 1117 161
955 낯선 길에서 민박에 들다 - 염창권 2003.05.16 962 161
954 사랑 - 김상미 2003.08.14 1773 161
953 단검처럼 스며드는 저녁 햇살 - 이덕규 2003.11.06 1140 161
952 물푸레나무라는 포장마차 - 이정록 [1] 2004.06.23 1243 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