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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안의 나인가 - 김정숙

2004.04.02 11:46

윤성택 조회 수:1776 추천:200

《널 소유하지 않으면서 또한 소유하는》 / 김정숙 / 《문학의전당》시인선


        내가 내 안의 나인가


        두꺼운 솜이불 둘둘
        말아 올리며
        침실 문 앞에서 달그락거리며
        말장난을 치는 고양이들에게
        나지막하게 타이르며 얘들아
        난 외롭지 않으니 다른 곳에
        가서 집을 근사하게 짓고
        행복하게 살면 안 되겠니, 하면
        쥐 죽은 듯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한참동안이나 듣고 있다
        고양이와 사람 사이에도
        정이 흐른다는 사실
        사람 말귀를 귀신같이 알아듣는다는 것을
        고양이들과 몇 번 대화 나누면서 알았다
        너희들 내 말 안 들으면
        혼난다 하면 숨죽이고 가만히 있고
        잘 들으면 예뻐할 거야 하면
        야옹야옹 그렇게

        담벼락에 줄지어 서 있는
        저녁에만 분단장하고 입술을 여는
        분꽃들 사이에 외롭게 피어 있는
        한 송아리 장미꽃과
        눈인사라도 하는 날에는
        저 모습이 내 모습인 것만 같아
        담벼락을 보고
        내가 내 안의 나인가 아닌가
        살아있음을 확인한 후에
        퉁퉁 젖 불리며
        새끼 떨쳐버린 어미 소처럼
        하얀 가슴 타 내려앉을 때까지
        목놓아 그렇게

        몸부림치도록, 잠 안 오는 날에
        꿈속에서 네 이름 목이 쉬도록 부르며
        너에게 달려가서 인정받고 싶어
        거실에 앉아 가만히
        내 발소리 엿듣고
        밤을 줄까 안 줄까 조바심 내고 있는
        저 가엾은 붕어들의
        아름다운 아미 쳐다보다가
        또 그렇게

        달빛에 익어 하얗게 말라비틀어진
        우리 집에서 살아 숨쉬는 생명체들
        온갖 나무들, 식물들, 동물들
        가슴이 까맣게 타서
        영양실조 걸린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그놈들 바라보다가
        이렇게 사는 거야 열심히
        내가 나를 사랑하고
        이기고 지키면서
        가슴 미어지게
        나는 울었다



[감상]
불의의 교통사고로 불구가 된 남편을 위해 자신의 영혼을 태워 쓴 절절한 사랑의 시, 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오는 시집입니다. 어제저녁 빗소리를 들으며 이 시를 읽다가 창문의 빗방울이 눈물이구나 싶었습니다. 어떤 수사나 상징을 논하기보다 그냥 마음으로 읽으면 되는 시입니다. 시인의 고통이 공감이 되어 다시 내 사랑으로 전이되어 오는 이 현상을 어째야할까요. '이렇게 사는 거야 열심히/ 내가 나를 사랑하고/ 이기고 지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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