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소유하지 않으면서 또한 소유하는》 / 김정숙 / 《문학의전당》시인선
내가 내 안의 나인가
두꺼운 솜이불 둘둘
말아 올리며
침실 문 앞에서 달그락거리며
말장난을 치는 고양이들에게
나지막하게 타이르며 얘들아
난 외롭지 않으니 다른 곳에
가서 집을 근사하게 짓고
행복하게 살면 안 되겠니, 하면
쥐 죽은 듯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한참동안이나 듣고 있다
고양이와 사람 사이에도
정이 흐른다는 사실
사람 말귀를 귀신같이 알아듣는다는 것을
고양이들과 몇 번 대화 나누면서 알았다
너희들 내 말 안 들으면
혼난다 하면 숨죽이고 가만히 있고
잘 들으면 예뻐할 거야 하면
야옹야옹 그렇게
담벼락에 줄지어 서 있는
저녁에만 분단장하고 입술을 여는
분꽃들 사이에 외롭게 피어 있는
한 송아리 장미꽃과
눈인사라도 하는 날에는
저 모습이 내 모습인 것만 같아
담벼락을 보고
내가 내 안의 나인가 아닌가
살아있음을 확인한 후에
퉁퉁 젖 불리며
새끼 떨쳐버린 어미 소처럼
하얀 가슴 타 내려앉을 때까지
목놓아 그렇게
몸부림치도록, 잠 안 오는 날에
꿈속에서 네 이름 목이 쉬도록 부르며
너에게 달려가서 인정받고 싶어
거실에 앉아 가만히
내 발소리 엿듣고
밤을 줄까 안 줄까 조바심 내고 있는
저 가엾은 붕어들의
아름다운 아미 쳐다보다가
또 그렇게
달빛에 익어 하얗게 말라비틀어진
우리 집에서 살아 숨쉬는 생명체들
온갖 나무들, 식물들, 동물들
가슴이 까맣게 타서
영양실조 걸린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그놈들 바라보다가
이렇게 사는 거야 열심히
내가 나를 사랑하고
이기고 지키면서
가슴 미어지게
나는 울었다
[감상]
불의의 교통사고로 불구가 된 남편을 위해 자신의 영혼을 태워 쓴 절절한 사랑의 시, 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오는 시집입니다. 어제저녁 빗소리를 들으며 이 시를 읽다가 창문의 빗방울이 눈물이구나 싶었습니다. 어떤 수사나 상징을 논하기보다 그냥 마음으로 읽으면 되는 시입니다. 시인의 고통이 공감이 되어 다시 내 사랑으로 전이되어 오는 이 현상을 어째야할까요. '이렇게 사는 거야 열심히/ 내가 나를 사랑하고/ 이기고 지키면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면서도 가볍지 않고,
그렇다고 결코 무겁지도 않고.
아, 시는 이렇게 쓰는 거구나!
3연에서,
밥(?)을 줄까 안 줄까 조바심 내고 있는
저 가엾은 붕어들의
아름다운 아가미(?) 쳐다보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