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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병 -공광규

2004.04.29 17:53

윤성택 조회 수:1349 추천:174

시집《소주병》/ 공광규/ 실천문학사 시인선 (2004)
        
                
        소주병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감상]
아버지와 술병과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시입니다. 자기 속을 비워내며 가족에게 채워주는 아버지. 그러면서 세월 속에 방치되는 묵묵한 아버지. 술 안에서 당당하다가도 술 밖으로 깨어나면 무기력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이미지를 이 시는 '빈 소주병'으로 눈물겹게 바꿔냅니다. 깡소주 마실 줄 알면 제몸이 비어 있다는 걸, 아버지처럼 깨닫게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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