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喪家에 모인 구두들》/ 유홍준/ 실천문학사 시인선 (2004)
자전거 체인에 관한 기억
눈이 없는 사람이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에 시
선을 둘지 모르는 개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일치감치
부모의 눈알을 후벼 먹은 후레자식들이 휘파람을 불며
모여 들었다 제멋대로 각목이 쟁여져 있었다 훔쳐온 자
전거가 벌겋게 썩어가고 있었다 개만도 못한 자식들이
자전거 체인을 벗겨 흉기를 만들고 있었다 담배를 돌려
피우며 팔뚝을 지지고 있었다 비린내가 풍겼다 고기는
팔고 비린내만 달고 온 어머니, 돈에도 비린내가 난다
돈에도 비린내가 나 빠지지 않는 사람냄새에 진절머리
쳤다 눈 없는 아버지 말없이 듣고 있었다 손목에 체인
을 감아쥐고 무엇을 후려치고 싶은 시절이 흘러가고 있
었다
[감상]
맹인인 아버지, 시장에서 생선을 파시는 어머니, 그리고 철없는 아들. 이 시는 맨 마지막부터 역순으로 이미지와 이미지를 덧대며 첫 문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읽어내는 활자의 정보는 읽는 순서가 아니라 다 읽고 나서 되짚어보는 시간에야 비로소 울림으로 이해됩니다. 자전거 체인으로 맞아본 적 있으신지요? 그렇다면 그 고통을 짐작해보았는지요? 아마도 이 시는 끔찍한 폭력과 상처, 그 언저리에서 통달해내는 상상력이 독특하게 배치된 듯싶습니다. 최근 주목받는 시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