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미 가족」/ 마경덕/ 《문학마을》2003년
더미 가족
차에 태우고 안전벨트를 매어 주네. 낯익은 사내 웃으면서 손수 시동을
걸어주네. 참 친절도 해라. 죽음이 이렇게 여유로울 수 있다니! 순간 끔찍
한 공포를 잊고 말았네. 다녀올게요. 무사히 잘 다녀올게요. 가벼운 나들
이처럼 손을 흔들며 마주 웃어 주었네. 옆자리엔 임신 중인 아내와 뒷좌
석엔 어린 아들놈이 타고 있었네. 문을 닫으며 사내가 또 웃었네. 무사할
거야. 별 일 아니야. 그 인자한 눈이 그렇게 말했네. 나는 널 낳은 아비야.
너에게 팔과 다리를 준 아비야. 자그마치 네 몸값이 얼만지 아니? 그래요.
억대가 넘는 몸값을 알아요. 복제인간을 만드신 위대한 아버지. 내 가족
의 갈비뼈는 아버지의 것과 비슷해요.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자동차 한
대를 위해 일가족을 거느린 아버지. 이젠 당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요. 도
무지 방어(防禦)를 모르는 제 이름은 더미*거든요. 아, 아버지 아무 걱정
마세요......이제 악셀을 밟고 벽을 향해 달려가면 되나요?
*더미(dummy)
센서가 달린 실험용 인형, 각종 자동차 충돌시험에서 운전자 대신 가상의 사고를 당한 뒤 예상 상해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함. 자동차 한 대를 개발하기 위해 수많은 더미가 쓰러진다고 함.
[감상]
이 시를 읽고 한참 동안 멍하니 있게 되는군요. 더미에는 마네킹과 다르게 사람과 같은 고무 피부, 뼈와 비슷한 탄성을 가진 금속 뼈가 들어 있다는 군요. 1억원이 넘는 더미는 충돌을 위해 가족을 이뤄 신형차에 오릅니다. 그 말없는 더미에게 이 시는 따뜻한 언어와 생각과 마음을 심어줍니다. 이미 예정되어 있는 죽음을 알면서 차에 오르는 슬픔 같은 것, 제 몸이 온통 뒤틀려 부서질 것을 예감하면서도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라는 말, 가슴 한켠을 아련하게 합니다. 손상된 부속품을 교체하며 차에 오르고 있을 더미의 고통이 센서로 감지되어, 온전히 저 빗속의 차가 설계되었습니다.
으스스한 공포로 시작해 결국 아하! 자동차 실험용 인형이었구나 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됩니다. 그러나 왠지 자욱한 연기가 피어 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