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맞는 여인숙」/ 이용한/ 《실천문학》2004년 봄호
비 맞는 여인숙
그대 없는 별에서 오늘도
숙박계를 쓰고
지나친 추억과 일박한다
이번 세상은 너무 가혹해!
티끌 속을 날아다니는 것도 힘들군!
그 옛날 토벌대를 피해
개마고원을 타박타박 넘는 것만큼이나
더 이상 쫓기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부양할 가족도 없는데,
나는 왜 아직도 사춘기처럼 아픈가
나는 왜 자꾸만 속초 앞바다가 그리운가
이 비 맞는 여인숙에서
밤이면 독감처럼 파고드는……,
엽서만한 그리움
아직도 추억의 뒷골목을 윤회하는
지구의 악몽
그 옛날 강원도에서의 내 꿈은 우편배달부였던가
그대 집 앞에 걸려 있던 낡은 우편함
끝내 편지 한 장 전하지 못하고
이렇게 나―, 느티나무처럼 늙어서
흐릿한 눈 속을 뒤덮는
커다란 적막,
이 쓸쓸한 유배지에서
다 끝난 망명정부처럼 나는 웃고 있네
[감상]
'여인숙'이라는 감성적 소재를 활달한 기개의 상상력으로 풀어낸 점이 이 시의 매력입니다. 감성에 기댄 시는 자기도취 식의 감상(感傷)을 어떻게 객관화하는가 라는 천형을 견뎌야합니다. 그것이 두려워 훌쩍 자기 관념의 세계로 몰입해, 그 감정의 틈을 보여주지 않는 시인도 많습니다. 그래서 쓸쓸함을 자기 것으로 말할 수 있는 정면 돌파가 좋습니다. 역사적 맥락에서 직유를 끌어오는 솜씨도 서정과 어우러져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독특한 느낌입니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