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카오스이론」/ 김연숙/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2004년 5,6월호
신의 카오스이론
두 날개가 가벼워 햇빛 따라 날다 보니 가도 가도 어쩌나, 검은 물결뿐이네
파닥파닥 쓸려 가던 나비 한 마리, 땅끝 저 쪽 하늘로 되살아온다 토네이도
폭풍 몰아 숨어서 온다
U턴을 반복하던 솥단지 속 물방울들 솟구친다 춤을 춘다 펄 펄 끓어오른다
블랙홀 가까이엔 별들의 축제 궤도를 벗어나니 저리 신명나는가 무언가, 무
언가 있다 술렁술렁 수상한 조짐 벼락천둥 치던 그 무서운 밤들처럼
빈손으로 쓰러져 앞이 캄캄해올 때 믿어도 좋으리라,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움직여 볼까, 슬쩍 웃으며 손 비비며 일어나 고리와 고리를 이어주는 어둠 속
의 그 손길 어림도 짐작도 할 수 없는 물밑 작업을
[감상]
솥단지 안 물이 끓기 시작합니다. 이 물리적인 현상을, 이 시는 '초기 조건에의 민감한 의존성' 즉 나비효과와 카오스이론으로 이끌어냅니다. 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물을 끓이는 일은 운명의 세팅과도 같은 거겠지요. 그러나 그 이후의 일은 수많은 가능성과 사건으로 얽혀있기 마련입니다. 3행 시적 화자의 위치와 '물밑작업'이라는 상상력이 인상적입니다.
솥단지에 묵을 쑤어보면 이 시의 상황을 더욱 실감합니다. 도토리 가루가 물과 불을 만났 때...헤리가 세리를 만났을 때....이 카오스 덩어리들을 관장하는 물밑존재는 신이죠. 나무주걱을 손에 쥔 부엌신의 대리자, 굳건한 어머니들이여. 몇 주먹 카오스를 한 접시 코스모스로 전환시킨 사제들이여. 그대들 시인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