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만드는 여자 4」/ 김은덕/ 2004년 《시현실》봄·여름호, 신인작품상 中
꽃을 만드는 여자 4
- 조산원(助産員)
달빛 끌어당겨 산문을 열어야 하는 그녀
만월(滿月)을 상하지 않게 잘 받아야 한다
소독된 마음을 펼쳐놓고 어둠을 가른다
푸른 달빛을 건져 올릴 수 있을까?
숨죽이며 물때를 기다린다
달이 물 속 깊이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구름에 산 그림자
겹쳤다, 벗어났다 한다
밀물이 작은 파도를 몰고 온다
점점 파도가 거세지더니
큰 파도가 산을 내려친다
혼절했던 산을 가까스로 일으켜
실뿌리 같은 세상 끈을 움켜쥐게 한다
물때를 놓치면 안된다고
부르르 떠는 산에 불을 당긴다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달 비치더니
큰 파도 하나 달려들자
재빨리 타고 앉아 파도를 자른다
순간, 썰물이 미끈덩한 달 하나 뱉어낸다
바짝 날 세운 그녀
두 손 황홀한 달을 받쳐든다
쪼그리고 있던 달이 울음을 토하자
달꽃 피어나
주위가 온통 환해진다
[감상]
조산소에서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과정을 흥미롭게 물때와 '달'로 비유한 시입니다. 일순간 찾아오는 산통을 밀물과 절묘하게 잇대어 잔잔한 울림을 줍니다. 아이를 받아 안은 행복한 표정을 '주위가 온통 환해진다'로 묘사한 결말에서 후련한 시적 성취가 느껴집니다. 몇 개의 공간 혹은 몇 개의 사물을 직관으로 깁는 얼개, 그 언저리에서 시가 임팩트할 에너지가 생성된다는 점. 새삼 느끼게 하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