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선」/ 이동호/ 《다층》2004년 여름호
만선
기차가 닻을 내린다. 어둠이 거칠게 파도치는 레일 너머 불 밝힌
인가가 파닥거린다. 그물을 쳐라. 확성기에서 명령이 떨어진다.
승무원들이 차량 칸칸이 오가고 사람 떼 우왕좌왕 몰린다. 발 디
딜 틈 없이 들어찬 사람들, 몸부림치고 더러는 운명에 순응한 듯
눈을 감는다. 기차의 닻이 올려지고 열 한 냥 기차가 포만감에 헉
헉거린다. 기차는 만선(滿船)이다. 차량 칸칸이 몰린 사람들의 몸
이 꿈틀거린다. 사람들의 몸 속 바다가 웅성거린다. 기차의 옆구
리 속에 끼인 사람들 창 쪽으로 꾸역꾸역 몸 눕힌다. 피곤한 눈빛
들이 창 밖 어둠을 그리워한다. 기차가 정박했다. 역사는 거대한
공동어시장, 출구에서는 경매가 한창이다. 검은색 작업복으로 입
찰(入札)을 거머쥔 역무원의 흡족한 표정너머 소금 끼 묻은 안개
가 몰려든다. 사람들 일렬로 구겨진 대합실 앞에는 비둘기가 갈퀴
를 세운다. 역사의 펄럭이는 깃대가 정박한 기차 옆구리의 비린내
를 닦는다. 사람들을 나눠 가진 가로등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감상]
기차를 어선으로 보는 상상력이 좋습니다. 이처럼 상상력은 언어를 통해 상식을 뒤엎고 새로운 다른 것을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기차역이 '공동어시장'으로 실감나는 이유는 은유와 직관이 스스로 생명을 획득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