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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의 식사 - 황병승

2004.07.30 16:56

윤성택 조회 수:1286 추천:168


「이파리의 식사」/ 황병승/ 2003년 『파라21』로 등단



        이파리의 식사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어요
        어머니 빗소리가 좋아요
        머리맡에서 검정 쌀을 씻으며 당신은 소리 없이 웃었고
        그런데 참 어머니는 재작년에 돌아가셨잖아요
        
        나는 두 번 잠에서 깨어났어요
        창가의 제라늄이 붉은 땀을 뚝뚝 흘리는 여름 오후
        
        안녕 파티에 올 거니 눈이 크구나 짧고 분명하게 종이인형처럼 말하는 여자친구 하나 갖고 싶은 계절이에요
        
        언제부턴가 누렇게 변한 좌변기,에 앉아 열심히 삼십세를 생각하지만 개운하지 않아요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저 제라늄 이파리 어쩌면 시간의 것이에요
        
        사람들과 방금 했던 약속조차 까맣게 잊는 날들
        베란다에 서서 우두커니 놀이터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하나 둘 놀던 아이들이 지워지고
        꿈속의 시계 피에로 들쥐들이
        어느새 미끄럼들을 차지하는 사이......
        
        거울 앞에 서서 어느 외로운 외야수를 생각해요
        느리게 느리게 허밍을 하며. 오후 네 시,
        
        바람은 꼭 텅 빈 짐승처럼 울고
        
        살짝 배가 고파요


[감상]
시도 물방울무늬 원피스처럼 유행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만고만하고 매끈한 시에서 오는 안정감은 어찌 보면 익숙함입니다. 그래서 새롭다와 익숙함, 그 사이에서 시는 마땅히 남들이 내지 않는 목소리의 신선함에 가치를 지닙니다. 그런 점에서 이 시가 주목해야할 듯 싶고요, 세세한 비유에 대한 정교함보다는 선 굵은 틀에서의 거침없는 표현들이 시선을 붙듭니다. '외로운 외야수', '관계'라는 이름의 투수가 호투하고 있는 요즘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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