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 너머의 눈동자」/ 나희덕/ 『창작과비평』2004년 봄호
수족관 너머의 눈동자
삼짇날 아침 나는 발견되었다
방앗간에 앉아 있던 한 시인*에 의해
그가 하릴없이 뒤적이던 묵은 여성잡지 속에서,
생불이라 불리는 숭산 스님의 수행담과
전도연이 알몸 섹스 연기를 했다는
기사 사이에서, 성과 속 사이에서,
그가 보았다는 내 산문집 기사 속에서
그의 눈동자에 발견된,
그의 시에서 자신을 발견한
나는 누구인가
시집을 닫고 부엌으로 가서 그릇을 씻는다
무엇에 찔린 듯 아프다
물이 손등을 흘러내려 먼 곳으로 가는 동안
어떤 말들이, 기억들이 흘러내린다
십여 년 전 영등포 후미진 다방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의 등뒤에는 수족관이 놓여 있었고
내 시선은 열대어들을 따라 어색하게 두리번거렸다
그는 쫓기고 있었으나 자유로워 보였고
나는 어떤 날보다도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인파 속으로 사라졌던 그가
몇 달 후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푸른 수의를 입은 그를 한번쯤 더 보았던가
면회창 사이로 말은 자꾸 끊어지고
문밖에는 진눈깨비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 어느덧 봄이 오고,
진눈깨비 대신 황사 날리는 삼짇날 아침
방앗간에 앉아 있던 그에 의해 나는 발견되었다,
낡아가는 지느러미를 파닥이며 거대한 수족관 속에서.
*백무산 「삼짇날 아침」(『初心』, 실천문학사 2003)
[감상]
'자유'라는 것이 수족관 속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이 시는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어느 노동자 시인을 떠올립니다. 투쟁과 암묵적 동조 사이에 놓여 있던 화자의 위치가 자꾸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되울려 나옵니다. 그것은 마치 타인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부끄러움이랄 까요. 마지막 연, 다방의 수족관이 결국 그의 시선에서 읽혀지고 그 안에 화자가 들어있다는 반전은, 잔잔한 성찰적 발견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