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 함민복/ 《창작과비평사》시인선
달의 눈물
금호동 산동네의 밤이 깊다
고단한 하루를 마친 사람들이
노루들의 잠자리나 되었을 법한
산속으로 머리를 눕히러 찾아드는 곳
힘들여 올라왔던 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몸 더럽히고
흘러내리는 하수도 물소리
숨찬 산중턱에 살고 있는 나보다
더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 많아
아직 잠 못 이룬 사람들 많아
하수도 물소리
골목길 따라 흘러내린다
전봇대 굵기만한 도랑을 덮은
쇠철망 틈새로 들려오는
하수도 물소리
누가 때늦은 목욕을 했는지
제법 소리가 커지기도 하며
산동네의 삶처럼 경사가 져
썩은내 풍길 새도 없이 흘러내리는
하수도 물소리
또 비린내가 좀 나면 어떠랴
그게 사람 살아가는 증표일진대
이곳 삶의 동맥처럼
새벽까지 끊기지 않고
흐르는
하수도 물소리
물소리 듣는 것은 즐겁다
쇠철망 앞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물면
달의 눈물
하수도 물소리에 가슴이 젖는다
[감상]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가파른 산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오수를 '달의 눈물'로 바꿔내는 직관에서 숨을 잠시 멎습니다. 서정도 서정이겠지만, 추함을 아름다움으로 볼 줄 아는 시인의 인성에 감복하게 되고요. 소시민의 삶 속에서 하나의 개체로 자신을 투사하고 거기에서 깨닫는 과정이, 코 싸매고 지났던 나를 호되게 가르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