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달의 눈물 - 함민복

2004.08.24 19:03

윤성택 조회 수:2209 추천:220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 함민복/ 《창작과비평사》시인선


        달의 눈물        
        
        금호동 산동네의 밤이 깊다
        고단한 하루를 마친 사람들이
        노루들의 잠자리나 되었을 법한
        산속으로 머리를 눕히러 찾아드는 곳
        힘들여 올라왔던 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몸 더럽히고
        흘러내리는 하수도 물소리
        
        숨찬 산중턱에 살고 있는 나보다
        더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 많아
        아직 잠 못 이룬 사람들 많아
        하수도 물소리
        골목길 따라 흘러내린다
        
        전봇대 굵기만한 도랑을 덮은
        쇠철망 틈새로 들려오는
        하수도 물소리
        누가 때늦은 목욕을 했는지
        제법 소리가 커지기도 하며
        
        산동네의 삶처럼 경사가 져
        썩은내 풍길 새도 없이 흘러내리는
        하수도 물소리
        
        또 비린내가 좀 나면 어떠랴
        그게 사람 살아가는 증표일진대
        이곳 삶의 동맥처럼
        새벽까지 끊기지 않고
        흐르는
        하수도 물소리
        물소리 듣는 것은 즐겁다
        
        쇠철망 앞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물면
        달의 눈물
        하수도 물소리에 가슴이 젖는다
        

[감상]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가파른 산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오수를 '달의 눈물'로 바꿔내는 직관에서 숨을 잠시 멎습니다. 서정도 서정이겠지만, 추함을 아름다움으로 볼 줄 아는 시인의 인성에 감복하게 되고요. 소시민의 삶 속에서 하나의 개체로 자신을 투사하고 거기에서 깨닫는 과정이, 코 싸매고 지났던 나를 호되게 가르칩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671 그것이 사실일까 - 류수안 2004.10.13 1340 220
670 눈 반짝 골목길 - 정철훈 [1] 2004.10.12 1222 204
669 그 많은 밥의 비유 - 김선우 2004.10.11 1353 198
668 오래 닫아둔 창 - 신용목 [1] 2004.10.08 1475 173
667 전자레인지 - 김기택 2004.10.06 1293 187
666 냉장고 - 강연호 [2] 2004.10.05 1383 185
665 배달수씨에게 섭외된 편지들은 어디로 갔나 - 유미애 2004.10.04 1215 166
664 삼십 대의 병력 - 이기선 [2] 2004.09.01 1788 182
663 집으로 가는 길 - 김선주 [1] 2004.08.29 1923 181
» 달의 눈물 - 함민복 [1] 2004.08.24 2209 220
661 아직은 꽃 피울 때 - 하정임 2004.08.19 1818 197
660 수족관 너머의 눈동자 - 나희덕 2004.08.13 1540 177
659 화석 읽기 - 채풍묵 [1] 2004.08.11 1337 195
658 그 곳이 결국은, - 문성해 2004.08.09 1428 180
657 명중 - 박해람 [2] 2004.08.07 1427 182
656 시인의 폐허 - 성미정 2004.08.06 1286 193
655 스며들다 - 권현형 2004.08.04 1423 160
654 살구꽃이 지는 자리 - 정끝별 2004.08.02 1403 170
653 이파리의 식사 - 황병승 2004.07.30 1308 168
652 거의 모든것에 관한 거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 김경주 [2] 2004.07.28 1929 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