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수씨에게 섭외된 편지들은 어디로 갔나>/ 유미애 / 《현대시학》 2004년 10월호
배달수씨에게 섭외된 편지들은 어디로 갔나
- 거미
화야산 계곡에서 캐온 야생난 목이 붓는다
우편물을 실은 자전거가 61번지 비탈을 오른다
스물, 서른 지나 명치끝이 아릴 때면
수많은 경계와 이면도로, 샛길의 뿌리가 궁금했다
불안한 청춘은 배달되는 편지마다 붉은 줄을 그었다
오독의 시절이 이어졌다
생을 읽어내지 못한 눈에 곁눈이 튀어 올랐다
제 길을 가지 못한 다리에 센털이 돋았다
우편낭에 실린 구근들, 간지러운 발바닥을 움질댄다
손상된 꿈은 어디로 이식된 것일까
집 한 채가 전부인 동네, 구름이 둘러싸고 있다
테 줄*을 풀어 제 몸을 격리시켜 온 주인은
나선형의 길 어디에도 답신을 넣지 않았다
팔랑팔랑 61번지로 날아간 편지들은 사라졌다
화야산 빙벽에 침을 놓던 달수씨 그 사람
어느 빈집 우편함에 번개를 치는지
머리맡의 야생난 꽃이 터진다
편지요!
옥탑방 쇠문을 밀고 집왕거미 한 마리가 입을 벌린다
*테줄 : 거미가 줄을 칠 때 먼지 치는 줄
[감상]
거미와 편지, 야생난, 옥탑방으로 이어지는 소재들의 유기적인 흐름을 눈여겨봅니다. 산동네 옥탑방에 사는 배달수씨의 거미화 하는 솜씨가 현실적인 정황과 맞물려 뛰어난 묘사로 직조되고요. 시 안에서 야생난의 역할 또한 '빈집 우편함에 번개를 치는지/ 머리맡의 야생난 꽃이 터진다'의 시선도 예사롭지 않군요. 전체적인 윤곽이 잘 짜여져 치밀함이 느껴지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