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레인지>/ 김기택 / 《현대시》 2004년 9월호
전자레인지
불도 없는데
생선 비늘 들썩거린다
이글이글, 입에서 거품이 나온다
퍽, 퍽, 몸 안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 들린다
은비늘 하나 다치지 않은, 바다에서 막 나온 것 같은 생선,
김과 열을 뿜는 흰접시가 전제레인지에서 나온다
불도 없는데
할머니 얼굴 쭈굴쭈글해진다
등뼈가 휘어지고 오그라들고 굳어진다
거친 숨, 가는 신음이 몸 안에서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깊은 주름을 흔들며 이빠진 아이처럼 깔갈거리는 할머니,
상한데 없는 맑고 어린 웃음이 경로당에서 나온다
[감상]
1연과 2연의 대비로 인한 발상이 뛰어난 시입니다. 이처럼 상식을 뒤엎는 시각이 시적 직관을 발견해내는 코드입니다. 결국 '경로당' 자체를 '전자레인지'로 바꿔내는 공간적 변화가 이 시의 포인트인 셈입니다. 타이머 작동이 끝난 전자레인지처럼 순수한 웃음의 노인분들이 어린아이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 진정 시의 매력적인 메타포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