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신용목 / 《문학과지성사》시인선
오래 닫아둔 창
방도 때로는 무덤이어서 사람이 들어가 세월을 죽여 미라를 만든다
골목을 세워 혼자 누운 방
아침 해가 건너편 벽에 창문만 한 포스터를 붙여놓았다 환한 저 사각의 무늬를 건너
세상을 안내하겠다는 것인가 아이들 뛰는 소리 웃음소리 아득히 노는 소리 그러나
오로지 그녀를 통과하면서 나는 어른이 되었다
그녀의 몸에 남은 지문에 검거되어 영원한 유배지에서 다시 부모가 되어야 한다
몇 번의 바람이 문을 두드리고 지나갔지만
햇살이 방바닥을 타고 다시 창을 빠져나갈 때까지, 나는 일어나질 못했다
언제나 건널 수 없는 곳으로 열려 있는 추억처럼
어떠한 발굴도 뒤늦은 일인 것을
낮에 뜨는 흰 달이 모든 무덤을 지고 망각을 향해 건너가는 캄캄한 세상의 내부에서
언제쯤 내가 만든 미라가 발견될지 모른다
창문 너머 불타는 가을 산,
그 계곡과 계곡 사이에 솥을 걸고 싶다 바람의 솥 안에 눈송이처럼 그득한 밥을 나의 잠은 다 비우리라
[감상]
자의식에 대한 깊은 사유가 느껴지는 시입니다. 실존의 의미는 방치를 지나 '미라'에 이르고, 창밖의 소리들은 전생처럼 아득하기만 합니다. '어른'이 되는 것이나, '추억'을 정의하는 것이나, '잠'을 비우는 방식이 새롭습니다. 삶의 소소한 사연을 풀어내는 진지한 시선과 탄력 있는 문장이 인상적인 시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