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밥의 비유」/ 김선우 / 2004년 《문학사상》10월호
그 많은 밥의 비유
밥상 앞에서 내가 아, 입을 벌린 순간에
내 몸속이 여전히 깜깜할지 어떨지
희부연 미명이라도 깊은 어딘가를 비춰줄지 어떨지
아, 입을 벌리는 순간 췌장 부근 어디거나 난소 어디께
광속으로 몇억 년을 달려 막 내게 닿은 듯한
그런 빛이 구불텅한 창자의 구석진 그늘
부스스한 솜털들을 어루만져줄지 어떨지
먼 어둠 속을 오래 떠돌던 무엇인가
기어코 여기로 와 몸 받았듯이
아직도 이 별에서 태어나는 것들
소름끼치게 그리운 시방(十方)을 걸치고 있는 것
내 몸속 어디에서 내가 나를 향해
아, 입벌리네 자기 해골을 갈아 만든 피리를 불면서
몸 사막을 건너는 순례자같이
그대가 아, 입을 벌린 순간에
내가 아, 입 벌리네 어둠 깊으니 그 어둠 받아먹네
공기 속에 살내음 가득해 아아, 입 벌리고 폭풍 속에서
비리디 비린 바람의 울혈을 받아먹네
그대를 사랑하여 아, 아, 아, 나 자꾸 입 벌리네
[감상]
육체에 있어 '밥'이라는 상징은 먹어야만 하는 고달픈 천형만 같습니다. 인간의 영혼을 아무리 말한다 한들, 밥 앞에 입벌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 않습니까. 이 시는 이런 육체와 정신의 간극을 '욕망'의 것으로 묶어내는 시선이 인상적입니다. 어쩌면 '먼 어둠 속을 오래 떠돌던 무엇인가/ 기어코 여기로 와 몸 받았듯이'에서 볼 수 있듯 우리의 영혼은 탄생 이전의 것이며, '몸'을 받아 태어났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몸 속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그 아득한 여행에서 끝끝내 결핍으로 남는 것, 그리움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당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