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반짝 골목길」/ 정철훈 / 2004년 《문예중앙》여름호
눈 반짝 골목길
아직도 연탄 때는 집이 있나 보다 하고
무심코 지나칠 뻔했다
골목길 깊숙이 탄을 져 나르던 사내가 털퍼덕
맨땅에 주저앉아 두 발을 주물러대는 것이었다
저만치 팽개친 신발 속은
어느 무너진 갱도처럼 어둡고 막막한데
발가락 하나가 양말을 뚫고 나와 꼼지락거리고
사내는 발을 주무르다 말고 오가는 행인 속으로 눈길을 파묻는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무슨 이유가 있다거나
혹은 아무 의미도 없다 한들
거기 삐죽 삐져나온 새까만 발가락이 있는 한
게다가 연탄을 들인 돼지갈비집 입간판에 막 불이 들어왔으므로
살아볼수록 세상은 아름답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산다는 게 희망일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사내의 시선 밖에서 내가 사내를 지켜보듯
내 시선 밖에서 또한 나를 지켜보는
무참한 눈이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꼼지락대는 발가락처럼 나 자신이면서 내가 아닌
그 검고 반질반질 반짝이는
[감상]
연탄을 져 나르던 사내가 신발이 벗겨진 채 넘어져 다리를 주무르고 있습니다. 그 잠깐의 풍경에서 '산다는 것'을 되돌아보는 사유가 돋보이는 시입니다. 풍경을 강조하다보면 사유를 놓치기 마련인데, 자연스럽게 관념으로 넘나드는 흐름이 끌립니다. 이 생에 태어나 연탄을 져 나르기까지의 여정을 생각하노라면 여전히 '무너진 갱도처럼' 막막한 것이 세상살이입니다. 그럼에도 '산다는 게 희망'임을 사내를 관찰하는 '나'를 통해 발견하고, '나' 또한 누군가의 연민의 시선 안에 있다는 사실. 나는 또 누군가의 새까만 발가락이 되어.
이 누추한 희망의 이름은 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