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크레인」/ 고경숙 / 2004년 《부천문학》41호
타워크레인
함부로 내는 소음에도 아랑 곳 없이
안전모 쓴 아침이
힘찬 구호 외치며 올라온다
신축중인 빌딩 꼭대기
타워크레인이 서서히 움직이면
원심력으로 따라 도는 것들이 있다
도시를 지배하는 높이는
언제나 위압적이다
육중한 건물이 번쩍 들릴 때마다
시청 마당 비둘기 한 무더기
놀라 날아가고
가로수들 빈 가지를 턴다
며칠 전,
사내 하나 그 위에서 시위를 했다
펄럭이는 현수막이 없었더라면
사람들은 빠진 나사쯤으로 여겼을 것이다
나사 하나쯤 빠져도
당분간은 아무 일 없고,
타워크레인이 강풍에 노출될 때마다
풍향계처럼 어지러이 돌며 공중부양 하는
지상의 모든 것들,
자고 나면 뚝딱 조립되는 도시를 위해
부푼 마디 꺾으며 기다린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노란 철탑,
내가 딛고 서있는 지반의 무게와
대립하는 의지의 팽팽한 균형
그 너머로
봄이 빠르게 오고 있다
[감상]
타워크레인을 도시문명의 거대한 팔쯤으로 봐도 될까요. 타워크레인을 통한 '육중한 건물이 번쩍 들릴 때'를 포착하는 시선이 좋습니다. 도시 건설현장의 노동자조차 '나사'로 보일 수밖에 없는 현실, 문명 사회의 각박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있어 '봄'은 의지에 대한 노력과 희망에 대한 의미부여가 아닐까 싶군요. 소재를 주제로 유연하게 이끌어내는 솜씨가 좋은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