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방충망」/ 이기인/ 2000년《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찢어진 방충망
누군가, 찢어진 방충망을 꿰매어 놓았다
저 바깥 세상의 염증은 군데군데 상처를 만들기 시작한다
주문을 받기 위해 <차림표>를 내놓는 여자는 재떨이를 옮기고
냄새나는 구두를 정리하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엔 개의 죽음을 둘러싼 대형 냉장고가 으르렁거리고 있다
그 속에서 얼어붙은 턱을, 여자가 더듬는다
들썩거리는 솥뚜껑, 여자는 눈물을 빼고 마늘을 찧는다
긴 좌담이 펼쳐진 탁자 위로 오후의 파리떼가 찾아온다
우리들의 욕망은 한 그릇 수북하다, 수상하다
가슴이 무너지도록… 방충망으로 돌진한 것은 무엇일까.
[감상]
어느 보신탕집 한낮 풍경이 참 낯설게 느껴지는 시입니다. 문장마다 상식이라는 틀을 없앤 것 같다는 느낌, 소재의 절묘한 위치 변용이랄까요. 가령 '주방엔 개의 죽음을 둘러싼 대형 냉장고가 으르렁거리고 있다' 문장이 그러합니다. 대형냉장고의 팬모터 소리가 '으르렁'으로 바뀌는 순간, 개의 죽음은 은유화되는 거지요. 결국 방충망이 이 시의 '개'와 아무 상관없음에도 '돌진'이라는 단어로 말미암아 개와 연관된 상상을 자극합니다. 나름대로 독특한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