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 / 이장욱/ 2003년《문학판》겨울호
이탈
조그만 나사는 천천히 회전한다
한 바퀴를 돌아가는 아주 오랜 동안
구멍 깊은 곳으로 그가 빠져나간 만큼 바람 든다
안 보이는 그곳을 메우기 위해
사기그릇이 놓인 선반은 느리게 기울어진다
너를 보내고 돌아오면서 나는
시속 일백 킬로로 질주하는 택시 안에 있었다
나는 밤하늘에 젖어들었지만
추락에 대해 상상하는 별들은 없었다
별 하나가 보이지 않게 궤도를 바꾸는 순간
실내의 난은 무거워진 몸을 낮춘다
너는 나를 생각하며 내게서 멀어져갔다
소파에 누운 네 몸의 빈 곳으로
잠은 별빛처럼 스며든다
하지만, 모든 게 바뀔 수는 없어요
그것은 술을 마시며 네가 한 말이었다
붉고 긴 선들이 사차선 거리 일백 킬로의 택시를 바라보는 동안
사기그릇이 놓인 선반은 어떤 추락에 대해 상상한다
조그만 나사는 천천히 회전한다
구멍 깊은 곳으로 천천히 바람은 든다
밤거리의 저편으로, 나는 조금씩 기울어진다
[감상]
선반을 지탱하는 나사와 ‘너’를 병치시키는 조형력이 뛰어난 시입니다. 몇 개의 공간이 극적으로 배치되고, 그 공간들이 ‘이탈’이라는 주제에 맞춰 긴밀하게 작용한다고 할까요. 나사가 조여지는 모습에서 임팩트 되는 순간, 시적 화자와 동일시되는 결말이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