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를 하다가」 / 문 신/ 《현대시》2004년 11월호
도배를 하다가
도배를 한다
방 보러 와서 잠깐 마주쳤던, 전에 살던 젊은 부부처럼
등이 얇은 벽지를 벗겨내자
한 겹 초벌로 바른 신문이 나온다
나는 전에 살던 젊은 부부가 떠나던 날을 기억한다
벽지 뒷면에 바른 묵은 신문처럼
쉽게 찢어지는 청춘을 내면 깊숙이 묻어두고
천천히 돌아서던 그들을 향해
나는 하마터면 손을 들어 작별인사를 할 뻔했다
그들은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서로의 어깨를 감싼 채 트럭에 올랐다
사내는 말이 없었고
아이를 안은 여자는 자꾸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일 톤 트럭 짐칸을 반 넘게
쓸쓸함으로 채우고 떠난 그들은
세면대 위에 닳은 칫솔 하나를 남겼다
얼마나 많은 날들이 그 위에서 저물어갔던지
칫솔모는 빳빳했던 기억들이 주저앉아 있었다
새로 사온 꽃무늬 벽지를 자르고
풀을 먹여 벽에 바르면서
나는 벽지 뒤로 사라지는 그들을 보았다
분명 한 시절을 총총히 걸어왔을 각오들이
빛바랜 배경으로 시무룩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감상]
우리가 살아가면서 바라는 것, 세상 물욕이 행복의 다른 이름이거나 소망 따위가 되어버린 요즘 현실에서, 어쩌면 詩 속의 희망은 상투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욕심없이 불행을 객관화 시키는 솜씨가 돋보입니다. 도배를 하면서 ‘한 겹 초벌로 바른 신문’을 젊은 부부의 삶으로 은유해내는 부분이 단연 이 시의 발화지점이겠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상상력은 ‘한 시절을 총총히 걸어왔을 각오들’에 있기를 바라게 되는데, 최근 신인 중 믿을 만한 서정시를 쓰는 시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