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칼 - 박형준

2004.11.12 16:00

윤성택 조회 수:1214 추천:177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박형준/  창작과비평사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칼

           어머니는 팔순을 내다보면서부터
           손바닥으로 방을 닦는다
           책상 밑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둠침침한 침대 밑에 한쪽 손을 쭉 뻗어넣고
           엎드린 채로 머리칼을 쓸어내오신다
           어머니의 머리칼은 하얗고
           내 머리칼은 짧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것도 있다
           빗자루로 아무리 쓸어내도 방바닥에는
           어머니와 내 것이 아닌
           흔적이 떨어져 있다
           어머니는 먼지가 가득 묻은 머리칼 한움큼을 뭉친다
           그걸 보고 있으면,
           어머니의 지문이 다 닳아져
           우리 둘 외의 다른 머리칼로 변한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한달에 한번 다녀가실 때마다
           못난 자식을 두고 가는 슬픔이
           방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여, 버스정류장 앞에서 나는 그녀를 보낼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으로 보는 게 아닐까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쓸어보게 된다

[감상]
한번쯤은 보았음 직한 어머니, 혹은 할머니의 모습입니다. 방바닥을 손으로 쓸어내는 어머니에서 지문으로, 그 지문에서 연민으로 이어지는 잔잔한 울림이 인상적입니다. 좋은 시는 이처럼 시 안에 자신의 체험이 녹아 있는 것이다 싶습니다. 그러므로 시에 있어 진정성이란 현실을 인식하는 긴장의 순간이며,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기도 한 것입니다. 마른 손으로 쓸어내는 손빗질의 소리가 기억 속에서 쓸려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691 심장의 타종 - 박판식 2004.11.19 1332 176
690 나무는 지도를 그린다 - 송주성 [4] 2004.11.17 1455 183
689 달팽이 - 전다형 [1] 2004.11.16 1574 172
688 선명한 유령 - 조영석 2004.11.15 1122 165
»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칼 - 박형준 2004.11.12 1214 177
686 눈 내리니 덕석을 생각함 - 박흥식 [3] 2004.11.09 1160 164
685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슬픈 두 귀 - 박후기 2004.11.08 1139 170
684 정류장 - 안시아 2004.11.06 1654 194
683 뗏목 - 조은영 2004.11.04 1267 179
682 도배를 하다가 - 문신 2004.11.02 1259 181
681 정비공장 장미꽃 - 엄재국 2004.11.01 1108 183
680 이탈 - 이장욱 2004.10.28 1407 191
679 옛 골목에서 - 강윤후 [1] 2004.10.26 1730 203
678 찢어진 방충망 - 이기인 2004.10.25 1521 182
677 함평 여자 - 이용한 [2] 2004.10.23 1281 205
676 폭설, 민박, 편지2 - 김경주 [1] 2004.10.22 1368 206
675 냄비 - 문성해 2004.10.21 1456 223
674 똥구멍으로 시를 읽다 - 고영민 [1] 2004.10.19 1563 198
673 타워크레인 - 고경숙 2004.10.18 1225 209
672 가을, 도서관에서 - 남궁명 [2] 2004.10.14 1641 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