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박형준/ 창작과비평사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칼
어머니는 팔순을 내다보면서부터
손바닥으로 방을 닦는다
책상 밑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둠침침한 침대 밑에 한쪽 손을 쭉 뻗어넣고
엎드린 채로 머리칼을 쓸어내오신다
어머니의 머리칼은 하얗고
내 머리칼은 짧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것도 있다
빗자루로 아무리 쓸어내도 방바닥에는
어머니와 내 것이 아닌
흔적이 떨어져 있다
어머니는 먼지가 가득 묻은 머리칼 한움큼을 뭉친다
그걸 보고 있으면,
어머니의 지문이 다 닳아져
우리 둘 외의 다른 머리칼로 변한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한달에 한번 다녀가실 때마다
못난 자식을 두고 가는 슬픔이
방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여, 버스정류장 앞에서 나는 그녀를 보낼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으로 보는 게 아닐까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쓸어보게 된다
[감상]
한번쯤은 보았음 직한 어머니, 혹은 할머니의 모습입니다. 방바닥을 손으로 쓸어내는 어머니에서 지문으로, 그 지문에서 연민으로 이어지는 잔잔한 울림이 인상적입니다. 좋은 시는 이처럼 시 안에 자신의 체험이 녹아 있는 것이다 싶습니다. 그러므로 시에 있어 진정성이란 현실을 인식하는 긴장의 순간이며,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기도 한 것입니다. 마른 손으로 쓸어내는 손빗질의 소리가 기억 속에서 쓸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