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지도를 그린다」/ 송주성/ 1998년 ≪경향신문≫으로 등단
나무는 지도를 그린다
나뭇가지의 끝을 오랫동안 쳐다본다
바늘침같이 뾰족한 그 끝에 펼쳐진 하늘
누군가 베어버리지 않는 한
나뭇가지 끝은 뭉툭하지 않다
갑자기 뭉텅 멈추어서
끝을 이루는 법이 없다
한아름 밑둥에서부터 꼬챙이 가지 끝으로
조금씩 조금씩 가늘어지면서
아무것도 없던 하늘에
제 목숨의 한점 끝을 찔러두었을 뿐
나뭇가지의 끝은 비만하지 않고
언제나 바늘침처럼 뾰족하니 그만할 뿐
나무에는 나뭇가지 끝이 하나가 아니며
여럿의 끝으로 비로소 나무가 된다
한 끝을 향해 가다가도
다른 한 끝을 향한 길을 허용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향해 가는 나무
하늘에 두고 온 뿌리를 찾아 역류하는 나무
나뭇가지 끝을 오랫동안 쳐다본다
수많은 가지들
막다른 길 끝에 들어서서 우두커니
막막한 발끝을 쳐다보던 나무의 기억이
하늘에 판화처럼 찍혀 있는
나무는 지도를 그린다
끝으로 끝으로 가다가 어디쯤에서
다른 가지를 펼칠지 아무도 모르며
어느 한 끝을 대신하여
달리 갈 길을 잡을지 모른다
생각하면, 다들
초행길이었다.
[감상]
나무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묘사를 이끄는 에너지인 셈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눈여겨볼 것은 마지막 연에 있는데 ‘초행길이었다’라는 직관입니다. 어찌보면 나무를 바라보는 시인의 이런 관점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강한 비약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일체의 과정을 생략한 ‘초행길’은 나무를 통해 잔잔한 감동으로 남습니다. 시인의 생각이 건너와 공감되는 이유, 그 안에 담고 있는 나무에 대한 투사가 우리네 세상살이를 말해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