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손바닥』/ 나희덕/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누가 우는가
바람이 우는 건 아닐 것이다
이 폭우 속에서
미친 듯 우는 것이 바람은 아닐 것이다
번개가 창문을 때리는 순간 얼핏 드러났다가
끝내 완성되지 않는 얼굴,
이제 보니 한 뼘쯤 열려진 창 틈으로
누군가 필사적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 같다
울음소리는 그 틈에서 요동치고 있다
물줄기가 격랑에서 소리를 내듯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좁은 틈에서
누군가 울고 있다
창문을 닫으니 울음소리는 더 커진다
유리창에 들러붙는 빗방울들,
가로등 아래 나무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다
저 견딜 수 없는 울음은 빗방울들의 것,
나뭇잎들의 것,
또는 나뭇잎을 잃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부딪치는 나뭇가지들의 것,
뿌리뽑히지 않으려고, 끝내 초월하지 않으려고
제 몸을 부싯돌처럼 켜대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창 밖에 있다
내 안의 나무 한 그루 검게 일어선다
[감상]
비바람 소리를 ‘누가 우는가’로 보는 상상력이 좋습니다. 더 나아가 세상을 들여다보는 따뜻한 감성적 사유가 인상적이고요. 어떤 울음이라도 들으려는 자세, 그것이 삶에 대한 연민이고 세상에 대한 사랑일 듯싶습니다. 마지막 행 ‘내 안의 나무’에서처럼 나와 타자와의 합일화 자세가 여운을 더하게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