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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1 - 황상순

2004.11.27 11:48

윤성택 조회 수:1575 추천:207

「흔적 1」/ 황상순/ 《문학과창작》2004년 겨울호

        
        흔적 1

        네거리 횡단보도 아스팔트 위에
        한 사내가 모로 누워 있다
        (실은 여자였는지도 몰라)
        아니다, 누워 있는 것은
        흰 페인트로 그린 그의 윤곽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탈피를 하였던 것일까
        비 마악 그친 뒤 햇빛 쏟아져 내릴 때
        맞아, 저 빌딩 창에 반사되어 날을 세운 빛이
        그의 비상을 재촉하였을 거야
        비에 젖은 옷 훌훌 벗어버리고
        그는 여기서 처음 날개를 폈던 게지
        탈피의 고통으로 군데군데 핏자국이 번져 있다
        나비가 되어 날기 위해서는
        몇 개의 허물을 더 벗어야 하는 것일까
        몰려나온 개미들이 걸음을 멈추고
        사내가 남겨놓은 껍질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그가 걸어온 세상의 모든 길이
        물결치는 차량들 위에서 잠시 일렁거렸다


[감상]
교통사고 현장을 표시해둔 흰 선. 어쩌면 그런 자세로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를 누군가의 흔적을 이 시는 ‘탈피’의 시선으로 들여다봅니다. 몸이라는 허물을 벗는 것이 죽음이라면, 나비라는 상징은 죽음과 탄생의 어떤 표징이겠지요. 발견에 이은 상상력이 잔잔한 감동인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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