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국, 끓이기」/ 이동호/ 《현대시학》2004년 12월호
콩나물국, 끓이기
사내는 뚝배기 속으로
지휘봉을 가져간다
도에서 끓기 시작한 뚝배기 속의 음표들을
사내는 지휘하듯 휘휘 내젓는다
음계는 금세 높은음자리로 음역을 높인다
이 음악은 너무 뜨거워 맛보기가 힘들다
사내는 입술을 오므려 솔, 휘파람을 분다
휘파람이 뚝배기 속으로 뛰어든다
음악소리가 완전히 익기까지는
시간을 조금 더 끓여야한다
사내는 잠시 식욕을 닫고
기다리는 동안 창 밖을 바라본다
창 밖 나뭇가지가 세상을 휘젓는다
공중 부양하는 수많은 손바닥들
손대기에도 너무 뜨거운 세상 때문이다
땅의 뚝배기 속에 떨어지기도 전에
나뭇잎이 몸을 굴린다
사내가 삶의 안쪽으로 몸을 돌린다
뚝배기가 심장처럼 펄펄 끓어오른다
뚝배기를 식탁 쪽으로 옮긴다
사내는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에 숟가락을 끼운다
뜨겁게 김이 오르는 음표들을 입으로 분다
음표들이 낮은 음계에 도달한다
뒷모습이 콩나물인 사내가
음악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다
한 소절의 생이 고스란히 입안에서 씹힌다
창 밖 저녁노을이,
얼큰하다
[감상]
즐거운 상상력, 그리고 소재들이 유기적인 연관성으로 잘 빚어진 시입니다. 평범한 어법인 듯 싶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발랄한 시적기구(奇句)가 인상적입니다. 공허한 수사가 없는 이런 좋은 발상들로 인해 신선함이 느껴집니다. 음악과 음표, 콩나물로 이어지는 은유의 도미노에 흠뻑 젖다보면 어느새 얼큰한 노을빛 끝에 다다릅니다. 정독하는 동안의 객관적 시간을 단숨에 주관적 시간으로 단축시키는 힘이 있다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