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캘리포니아》/ 고경숙/ 문학의전당 시인선
그 이발소, 그 풍경
시골 이발소 앞 빨래건조대에
분홍 수건들이 바람에 나풀대고 있다
깨끗하게 면도를 마치고 나가는 남자의
파르스름한 턱을 감쌌을 훈기와 샴푸향기
집게로 고정시키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같이 들뜬
낱낱의 수신호가 허공을 부른다
하얀 보자기 목에 두르고 대기하는 사람들
삐거덕거리는 의자와 의자를 사이하고
행성처럼 떠있는 까만 뒤통수들
뜨거움으로 혹은 침묵의 냉랭함으로
어두움 떠다닌 시간들이
빨랫대에 걸린 수건만큼이나 비좁다
행성처럼 떠있는 머리 주위를 요리조리 돌아
귓불을 베어 물며 가위가 들려주는 세상 얘기
은하수로 흐르는 정오의 희망음악까지
모두 눈을 감고 경청한다
덥수룩해진 잡념을 털어내던가
가위질이 필요 없을 듬성듬성해진 태양인들
상관 있으랴
주기 일정하게 떠돌다가 한 달이 지나면
이곳에 모여 의자 하나씩 차고 늘어서면 그뿐,
내일 모레면 입대한다는 청년의 파란 지구가 싱그럽다
아가씨 스커트 자락에 얼굴을 묻듯
냄새 좋은 분홍색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거울에 비친 쑥스런 모습에
서둘러 뛰쳐나가는,
간판 옆에서 힘차게 도는 이발소 표시등처럼
씩씩한 그의 머리는
어떤 궤도를 그리며 세상을 돌아올까
만날 날 기약하자 깃발로 펄럭이는
분홍색 수건이 널려있는 그 이발소 그 풍경.
[감상]
시골에 하나 밖에 없는 이발소라면 필경 그 지역 사내들은 그곳을 기점으로 공전주기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 시의 이런 독특한 상상력은 세상사와 더불어 유쾌한 뒤통수를 떠올리게 합니다. 각박하고 모든 것이 개인화되어가는 현실에서 이처럼 詩가 조금 더 따뜻해졌으면 싶습니다. 흉기 같은 가위와 면도칼이 번뜩이는 이발소가 아름다운 이유, 태양인의 머리를 자전시키는 이발사의 손놀림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분홍색 수건이 펄럭이는 시골 이발소 궤도를 통과하면, 또다시 새로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