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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 조은

2004.12.22 11:13

윤성택 조회 수:1717 추천:194

<언젠가는> / 조은/ ≪현대시≫2004년 12월호

        
        언젠가는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는 기억 때문에
        슬퍼질 것이다
        수많은 시간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꽃들이 햇살을 어떻게 받는지
        꽃들이 어둠을 어떻게 익히는지
        세상을 외면한 채 한 곳을 바라보며
        시내버스를 기다렸다는 기억에
        목이 멜 것이다
        때로 화를 내며 때로 화도 내지 못하며
        무엇인가를 한없이 기다렸던 기억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목이 멜 것이다
        내가 정말 기다린 것들은
        너무 늦게 오거나 아예 오지 않아
        그 존재마저 잊혀지던 날들이 많았음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기다리던 것이 왔을 때는
        상한 마음을 곱씹느라
        몇 번이나 그냥 보내기도 하면서
        삶이 웅덩이 물처럼 말라버렸다는 기억 때문에
        언젠가는

[감상]

‘것이다’라는 말이 아릿합니다. ‘~것이다’는 시인의 미래적 관념을 구체화시키는 진술방식이겠지요. 지금 현재는 먼 미래에서 본다면 ‘내가 정말 기다린 것’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럼에도 ‘깨닫는 순간’은 언제나 현재를 방금 지난 과거일 수밖에 없습니다. 추억이 바싹 마른 밑바닥을 드러냈을 때 그 언젠가는 ‘것이었다’라고 불리는, 또 누군가의 기억에 차 오를 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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