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사소한 이름을 부르고 싶다> / 박소원/ 《문학선》2004년 하반기 신인상 당선작 中
네 사소한 이름을 부르고 싶다
그대도 공원을 돌며 몇 그루의 단풍나무와
만나보면 나무에게도 붉은 목젖을 보이면서까지
비명처럼 토해 내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마늘을 다질 때마다 매운 향이
두 눈을 콕콕 쏘아대던
그 발끈함과
어쩐지 조금은 닮아 있는 욕망들
아무리 여린 것들도 끝까지 가면
누구나 자기 안에 거역의 힘이 장전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저 나무들도 실은 혼자가 아니다
제 안에 수많은 타자를 담고서
그들과 치열한 교접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주먹을 불끈 쥐고 싸워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장렬히 자기를 주장하려 들 것인가
나날이 붉어지는 저 나무의 단풍잎들
내가 너무 가혹하니?
벌건 눈을 깜박이며 혼절하도록
제 안에 갇혀 서로가 서로를 운명처럼 밀어부치고 있는 것
만남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갇혀 있겠다는 선서인가
매일 이 아름다운 풍경은 코피를 쏟으며
내 사소한 이름을 부르고 있다
[감상]
붉거나 노란 잎새들이 모두 나무에게서 떨어져버린 겨울입니다. 이 시를 읽다보면 지난 가을 나무들의 긴박한 소란스러움이 활자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겨울나무에게서 침묵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무 내부에서 들려오는 자의식은 또한 우리 내부의 목소리이며, 그런 운명적인 잎새와 나무의 관계를 ‘만남’으로 직설해내는 말미 또한 나름대로 의미를 더해 주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