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사이> / 복효근/ 《시작》 2004년 겨울호
틈, 사이
잘 빚어진 찻잔을 들여다본다
수없이 실금이 가 있다
마르면서 굳어지면서 스스로 제 살을 조금씩 벌려
그 사이에 뜨거운 불김을 불어넣었으리라
얽히고설킨 그 틈 사이에 바람이 드나들고
비로소 찻잔은 그 숨결로 살아 있어
그 틈, 사이들이 실뿌리처럼 찻잔의 형상을 붙잡고 있는 게다
틈 사이가 고울수록 깨어져도 찻잔은 날을 세우지 않는다
생겨나면서 미리 제 몸에 새겨놓은 돌아갈 길,
그 보이지 않는 작은 틈, 사이가
찻물을 새지 않게 한단다
잘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 벽도
양생되면서 제 몸에 수 없는 실핏줄을 긋는다
그 미세한 틈, 사이가
차가운 눈바람과 비를 막아준다고 한다
진동과 충격을 견디는 힘이 거기서 나온단다
끊임없이 서로의 중심에 다가서지만
벌어진 틈, 사이 때문에 가슴 태우던 그대와 나
그 틈, 사이까지가 하나였음을 알겠구나
하나 되어 깊어진다는 것은
수많은 실금의 틈, 사이를 허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네 노여움의 불길과 내 슬픔의 눈물이 스며들 수 있게
서로의 속살에 실뿌리 깊숙이 내리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감상]
찻잔의 미세한 실금에서 시작된 시인의 상상력은 ‘틈’에서 ‘관계’에 이르기까지 잔잔한 깨달음으로 나아갑니다. 시적대상에서 길어내는 의미가 깊고 새롭습니다. 이처럼 진지한 성찰의 시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깨닫게 합니다. ‘하나가 되어 깊어진다는 것’ 그 진솔한 말을 귀기울여보게 되는군요.
할 말이 없네, 할 말이 없어!
이런 건 도대체 어디서 나온데요?
다음에 복효근 시인 만나면
좀 물어봐 주세요...
'아, 모르겠다. 나는 필사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