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뼈」 / 배용제 / 2005년 ≪현대문학≫ 5월호
구름의 뼈
말목들판 아득히
굽은 척추처럼 늘어선 조각구름 아래
웅크린 저 헐렁한 구름은 어느 노쇠한 짐승의 흔적일까
아무렇게나 제 몸을 흘리며
빈 들판 가득 출렁이는 바람 속, 얇은 그림자를 헹구는
가벼운 구름들도
무너질 듯 무너질 듯 버티는 뼈의 고통이 있는지
오래 목과 허리에 디스크를 앓고
기력이 다해 겨우 흐르듯이 걷는 아버지
주무를 때마다 형체 없이 무너진 구름의 내부에선
습한 바람 소리가 자꾸 새어나온다
아득한 것들과 빈 곳만을 탐하며 지나온 그의 방향에선
까마득한 봉우리를 넘던 전설들이 들려온다
어느 골짜기에서 한꺼번에 쏟아붓고 왔는지
이젠 습관적으로 떨구던
발등을 적실 몇 방울 눈물도 말라
헐거운 아버지를 견디는 구름의 뼈들
정체를 알 수 없는 바람들만 모여드는 말목들판
노을 속의 저 노쇠한 짐승은 아버지의 그림자일까
아버지를 주무르다 뒤뜰에 서서 바라본 허공
천천히 굽은 척추를 펴며 일어서는 구름의 뼈
구름은 구름의 길을 가면 그뿐
어떤 햇빛도 죽은 풀잎을 덮은 그림자를 지우지 못하리라
스스로 무너져내릴 때까지
구름의 저 아득한 뼈들이 세상의 빈 곳을 지탱하고
수만 가지 어둠들은 그곳에서 안식하리니.
[감상]
말목들판. 말의 갈기가 휘날리는 것 같은 들판쯤일까 싶군요. 이 시는 구름을 뼈로 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버지’를 감각적으로 형상화한 의미가 새롭습니다. ‘아득한 것들과 빈 곳만을 탐하며 지나온 그의 방향’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를 주무르다가 한 마리 짐승의 노쇠함을 느낀 시인은 결국 ‘구름의 저 아득한 뼈들이 세상의 빈 곳을 지탱하’리란 것을 발견합니다. 이렇듯 아버지가 키운 ‘수만 가지 어둠들’을 우리는 살아 있는 내내 겪어야합니다. 그러므로 구름에도 그 어떤 고통이 있다는 사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곳에 아버지가 있습니다.
시인의 발견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구름속, 그 뼈 사이로 아버지의 굽은 등이 보이네요
구름처럼 스스로 무너져내릴때까지
지탱하고자 애쓴 아버지의 삶을 읽습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