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속의 생애> / 배용제/ 《시작》2005년 여름호
잠 속의 생애
잠 속에서 그녀가 무어라 중얼거린다
누구와 채널을 맞춘 것일까
때로 웃기도 하다 손발을 흔들기도 한다
낯선 발음들에 귀 기울인다
밥 먹었느냐구,
친구 만나고 오느냐구,
그녀는 잠 속에서도 한 생을 살고 있다
그곳이 어딘지, 덩그렇게 혼자 남은 방을 휘둘러본다
잠 속의 그녀는
먼 안드로메다 성운이나 그보다 더 멀리
은하계 어느 별, 에메랄드 성벽으로 둘러 쌓인 실내에서
그곳의 남편과 새하얀 자식들이랑 마주 앉아서
다과를 나누는 걸까
산책길에 햇살보다 더 황홀한 빛에 도취된 걸까
가끔은 홀로 남겨진 내가 못미더운 듯
실눈을 떴다 다시 감으며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어떤 날은 기괴한 생을 살다 온다
그럴 때면 거친 소리들이 잠 속으로 흘러 다닌다
여기의 잠이 그곳의 일상이 되고
그곳의 잠이 이곳의 일상이 되는 그녀의 이중생활
우리는 그렇게 먼 거리를 달려와 낯선 별의 한때를
순식간에 흘려보낸다
몸을 뒤척이다 겨우 나를 바라본다
몇 십 년을 살다 온 얼굴로.
[감상]
누구에게나 그렇듯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작금의 도덕과 종교, 과학 위에 자신만의 세계관을 세워야 합니다. 이 세계관이 시로 쓰이게 될 어떤 현상에 <직관>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 점이 바로 글짓기와 詩쓰기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모든 관념과 고민, 통찰을 활자로 점철해내는 것입니다. 이 시가 매력적인 이유는 이렇듯 현실성을 넘지 않는 상상력과 <시간>에 대한 깊이 있는 모색 때문입니다. 잠 속의 삶과 잠 밖의 삶을 오가는 <그녀>의 연민의 표정도 내내 인상에 남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매일 밤 급속안구운동(REM) 수면 시간에 2시간 이상 꿈을 꾼다고 합니다. 잠 속의 또 다른 生을 살러가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하는 하루가 노곤해지는군요.
그렇군요 공감합니다 이 시속에서 그런것이 보여요
시인의 시선이 참 따스한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실적이면서...
시적인 표현들이 눈에 들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