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들> / 박주택/ 《시와사람》2005년 여름호
주름들
저 혼자 가는 길에 빛들은
그림자 곁으로 모이고
생의 것들이 속인 잠들만이
자정을 넘는다, 또한 구두 한 켤레로
남은 사내는 마지막 담뱃불로
그의 치열함을 지운다, 이것이
우리를 둘러싼 것이라면
바람의 입에 재갈을 물리리라
목구멍으로부터 혹은 폐로부터
울려 올라오는 잔뿌리들은
의자며 계단이며 간판을 움켜잡은 채
저녁에 웅웅거리고 있다
산 것들만이 죽은 것들이 두려워
불을 켜는 밤 또 누군가는
옥상에 올라 아득한 추락의 깊이에
앙상한 눈을 감는다
[감상]
시어와 시어 사이를 엮는 의미망에서 진중함이 배여 있습니다. 늦은 밤 옥상에 올라 담배를 피는 사내들은 필경 가족이 있는 중년의 <주름들>일 것입니다. <죽은 것들이 두려워/ 불을 켜는> 늙음이라는 것을 들여다보는 시인의 폐는, 어느덧 아파트가 되어 <의자며 계단이며 간판을 움켜잡은 채/ 저녁에 웅웅거>립니다. 폐의 신경 같은 잔뿌리들, 그리고 벽의 금들…곳곳에 상상력이 꿈틀거리는군요. 추락을 가늠하는 중년의 <앙상한 눈>에서 각박한 도시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불을 켜는 밤 또 누군가는
옥상에 올라 아득한 추락의 깊이에
앙상한 눈을 감는다
마지막 이 부분이 좋아서 여러번 읽어보았습니다
참 멋진 시네요
마음도 깊고...생각도 깊고 삶조차 깊은...좋은시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