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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과 놀다 - 이상국

2005.07.11 17:04

윤성택 조회 수:1444 추천:200

<어둠과 놀다> / 이상국 / 1976년 《심상》으로 등단


        어둠과 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골목길에서 누가 덥석 손목을 잡아끈다
        새로 온 저녁이었다
        자기네 집에서 쉬어 가라는 거였다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린다고 했지만
        이런 날이 날마다 있는 건 아니라며
        한사코 잡아끌었다
        나는 새우깡 한 봉지와
        소주를 받아 가지고
        학교 마당 나무 아래 저녁의 집에서
        어둠과 놀았다
        그리고 그가 데리고 가라는
        새로운 어둠과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돌아왔다


[감상]
지금까지 <어둠>이 갖는 상징은 <죽음> 혹은 <악>이나 <억압> 따위의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상식으로 굳어진 <어둠>을 친근한 그 무엇으로 바꿔냅니다. <저녁>도 돌아갈 집이 있고 누군가를 데려와 어울리고 싶은 이웃이 되었습니다. 문득 이 시의 이미지에서 우리의 <장례>를 떠올려보게 되는데, 흔히 집에서 사람이 죽으면 빈소를 차리고 문상객들이 와서 밤샘을 하며 놉니다. 곡소리만 없으면 영락없는 잔칫집이지요. 이처럼 <어둠과 놀다>의 난장에서 연상되는 많은 것들로 왠지 즐거워지는 시입니다. 그리고 감미료처럼 느껴지는 헛것의 쓸쓸함도 매혹이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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