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 놀다> / 이상국 / 1976년 《심상》으로 등단
어둠과 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골목길에서 누가 덥석 손목을 잡아끈다
새로 온 저녁이었다
자기네 집에서 쉬어 가라는 거였다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린다고 했지만
이런 날이 날마다 있는 건 아니라며
한사코 잡아끌었다
나는 새우깡 한 봉지와
소주를 받아 가지고
학교 마당 나무 아래 저녁의 집에서
어둠과 놀았다
그리고 그가 데리고 가라는
새로운 어둠과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돌아왔다
[감상]
지금까지 <어둠>이 갖는 상징은 <죽음> 혹은 <악>이나 <억압> 따위의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상식으로 굳어진 <어둠>을 친근한 그 무엇으로 바꿔냅니다. <저녁>도 돌아갈 집이 있고 누군가를 데려와 어울리고 싶은 이웃이 되었습니다. 문득 이 시의 이미지에서 우리의 <장례>를 떠올려보게 되는데, 흔히 집에서 사람이 죽으면 빈소를 차리고 문상객들이 와서 밤샘을 하며 놉니다. 곡소리만 없으면 영락없는 잔칫집이지요. 이처럼 <어둠과 놀다>의 난장에서 연상되는 많은 것들로 왠지 즐거워지는 시입니다. 그리고 감미료처럼 느껴지는 헛것의 쓸쓸함도 매혹이겠다 싶습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어둠을 느끼는 것,
사람은 누구나 혼자만의 동굴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꼭 고민이 없더라도
어둠속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자동화된 기계처럼
엉킨 생각들이 정리되곤 하지요
갑자기 시속에 나오는 짭짤한 새우깡이 먹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