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박 접시> / 정원숙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5년 7-8월호
은박 접시
소풍이 너무 좋아, 소풍을 가고 있었어 커다란 트럭에 친구들과 겹겹이 쌓여
어디론가 실려 가고 있었어 제기랄, 내 매끄러운 얼굴과 위아래 겹쳐진 그들의
얼굴이 징그럽게 미끄덩거렸어 너무 좋아, 숨이 막혀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
어 참을 수밖에 제기랄, 난 소풍 간다 너무 좋아, 나는 소풍 간다 수없이 뇌까
리는데 바람이 따귀를 갈겼어 너무 좋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추락하고 있었
던 거야 제기랄, 8차선 도로 위를 날고 있었던 거야 너무 좋아, 태양을 향해 손
을 흔들어댔는데 자유를 얻었는데 티코가 그랜저가 덤프트럭이 달려들어도 너
무 좋아, 온몸은 주름투성이 어느새 팍 늙어버린 거야 제기랄, 노란 햇살이 주
름의 틈새로 차갑게 파고드는 거야 너무 좋아, 아팠어 의식은 점점 흐려지는데
제기랄, 바람보다 가벼운 이 자유의 무게 그래도 난 소풍이 너무 좋아, 풍장을
치른 내 웃음소리 허공으로 경쾌하게 튀어 오르는 게
[감상]
트로트 음악이 달리는 트럭 창에서 솔솔 새어나옵니다. 그러다 트럭짐칸에 실린 은박접시 하나가 바람에 날아올랐겠지요. 도로바닥에 떨어진 그 은박접시를 <티코가 그랜저가 덤프트럭이> 밟고 지나갑니다. 이 시는 이렇게 쉽게 지나칠 수 있는 풍경을 발랄한 수사로 밀고 갑니다. 은박접시가 그러하듯 일회용품의 속됨, 그리고 가벼움을 <제기랄>과 <너무 좋아>로 반복시켜 경쾌한 운율감이 전해집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은박 접시>가 되어본 시인의 감성에 있겠지요. <바람보다 가벼운 이 자유의 무게> 제기랄 너무 좋아, 죽음조차 즐거운 소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