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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의 힘 - 문성해

2005.07.21 11:08

윤성택 조회 수:1286 추천:202

<외곽의 힘> / 문성해 / 2005년 《시평》봄호



        외곽의 힘

        도시의 외곽으로
        화훼단지가 펼쳐져 있다
        견고한 비닐하우스 아방궁 속에서
        천적도 없이 비대해진 꽃들이 사철 피어 있는 그곳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외곽에서 총이나 대포가 아닌
        꽃들이 쳐들어온다는 것, 트럭을 타고
        꿀과 향기로 중무장한 그들이
        아침마다 톨게이트에 진을 치고 기다린다는 것은,
        
        꽃집마다
        비장하게 피어 있는 저 프리지아들
        그 빛깔과 향기가 필사적이란 것을
        가까이 사는 벌 나비들은 안다

        매연 속에서
        암수술을 꼿꼿이 세워 꽃잎을 펼치고 있는 것이
        치열한 전투가 아닌 쓰레기 더미에
        저리도 비참하게 말라비틀어진 꽃들을
        어찌 설명해야 하나

        매일 수만톤의 꽃들이 도시에서 학살되어도
        내일이면 또 수많은 꽃들이 태어나는 외곽,
        꽃들은 아직 젊고 혈기왕성하다

        도시를 삥 둘러싸고
        핵실험실이 아닌
        꽃들이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은
        대체로 희망적이다

        그들은 매일 핵폭발하듯 꽃을 피운다


[감상]
시인의 같은 제목의 시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아마도 시인은 이 시를 온전한 ‘외곽의 힘’으로 인정한 모양입니다. 꽃을 군대로 환치 시키는 상상력이 너무 강렬해 문장을 비트는 비유 없이도 시 자체에 에너지가 충만합니다. 누군가에게 받았던 꽃다발이 방안에서 방치되어 시들다가, 쓰레기 더미로 향하는 것은 시인의 직관대로 꽃의 <학살>입니다. 우리가 어쩌다 꽃을 들판에서 잡아와 <꿀과 향기>를 취해왔는지, 어쩌면 우리는 꽃을 감정의 수단으로 삼아온 잔혹한 지배층은 아닌지요.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흑백논리로 대상을 보지 않는군요. 시가 도덕성을 강조하다보면 상투적인 발상이 되니까요, <대체로 희망적이다>에서 마음 외곽의 힘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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