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겠네> / 함성호 / 《현대문학》2005년 8월호
미치겠네
우체국에 불이 났다네
우리집 차도와 인도의 경계석이 박살났네
며칠은 청구서가 배달되지 않겠다고
사람들은 불구경을 하면서도
우리집 경계석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네
미치겠네
경계석이 무너진다고 악을 써대도
소방관들은 한가롭게 불꽃에 물을 주고 있네
아내는 큰일났다 큰일났다 하면서도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고
나는 경계석 근처에서 안타까워 떠날 수 없네
미치겠네
바퀴는 너무 무거워
우리집 경계석이 버틸 수 없네
아무도 우체국에 맡긴 사연은 없는지
사람들은 불꽃에 귀를 기울이다
집으로 돌아가 고기를 굽고 있네
미치겠네
우리집 경계석은 모양도 좋고 높이도 적당해서
앉아 있기 좋았다네
우체국에 불이 났다네
우리집 경계석도 박살났다네
미치겠네
[감상]
내것이다라고 단정한 것들에게 <미치겠네>는 집착의 ‘감탄사’입니다. 우체국에 불이 났는데 경계석타령이나 하고 있는 화자를 통해, 소유욕이 얼마나 마음을 옭아매는지를 느끼게 합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이러한 이기심이 작용하면 <소방관들은 한가롭게 불꽃에 물을 주고 있네>의 빼어난 비유조차 당사자의 절박함으로 읽힙니다. 함성호 시인은 건축가입니다. 사실 건축가가 설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이웃 필지와의 소소한 경계다툼에서 진이 빠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내땅 니땅 하면서 핏대를 세우다보면 경계석이 올라가고, 그것을 지키느라 쩔쩔매는 모습이 불난 옆집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우체통이 유난히 붉어, 하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