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꿈> / 이덕규 / 《현대시학》2005년 7월호
꽃 꿈
꿈속에서 활짝 핀 꽃을 보면
다음날 몸에 상처 입었네
사는 게 사나워질수록 꿈에
만개한 꽃밭 자주 보였는데
몸 곳곳에 핀, 그
크고 작은 선홍빛 꽃잎들
꿈땜처럼 마를 때, 나는 정말
자주 자주 들판으로
이름모를 들꽃들 보러 나갔네
오, 누가 어디 먼데서
쓰라린 마음의 찰과상을 입고
헤매이다 지쳐 쓰러진
험한 꿈이
여기 이렇게 문득
생시로 피어났을까
어느 메마른 이가 이토록
향기로운 꽃꿈을 선뜻 척박한
내 몸에 대고 꿔주었을까
지난밤 꽃피던 통증이
그저 봄바람처럼 맑아져서
들판에 앉아 하염없이
흰 붕대를 풀어내는, 나는
지금껏 누굴 위해
좋은 꿈 한번 꿔주지 못하고
어디 먼데
꿈속의 꽃밭이나
사납게 찾아 헤매는 사람
[감상]
'꽃 꿈'과 '상처'라는 현실적 고리를 다시 꿈으로 가져가, 나와 타인과의 애틋한 인연을 돌아보게 하는 시입니다. '꽃'을 통해 타인을 발견하고 나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을 등가 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저 대상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여느 성찰모드 형식보다 좀더 직관의 밀도가 배여 있다고 할까요. '향기로운 꽃꿈을 선뜻 척박한/ 내 몸에 대고 꿔주었을까'에서 한 번, '나는/ 지금껏 누굴 위해/ 좋은 꿈 한번 꿔주지 못하고/ 어디 먼데/ 꿈속의 꽃밭이나/ 사납게 찾아 헤매는 사람'에서 두 번, 스캐너가 활자를 훑듯 밝은 빛 같은 울림이 마음을 훑고 내려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누구의 '꽃 꿈'이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