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하다》 / 정병근 / 《다시》(2005, 근간) 中
고백
너를 사랑한다는 핑계로
나는 나를 사랑했다
너를 사랑할수록
더 많이 나는 나를 사랑했으며
나를 원 없이 사랑한 후에
또다시 너라는 이름의 사랑을 찾아
바람과 허기의 쑥대밭을 어슬렁거렸다
나는 너무 많은 나를 사랑하고 사랑했으므로
이제 너를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지만,
너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천형을 받았다
너를 사랑하는 내가 있다
[감상]
<너를 위해 내가 한 것은 별로 없다. 나는 다만 갈구하고 투정했을 뿐, 너를 사랑한다는 핑계로 나는 나를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나의 사랑은 이토록 이기적이다. 하여, 나는 너에 대해, 사랑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라는 시와 곁들인 시인의 산문에 눈길이 머뭅니다. 사랑이 이토록 복잡 미묘한 자기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에 새삼 공감하면서, 사랑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는 세상의 친구들과 읽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