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롯 속의 그녀들》/ 서안나/ 《문학과경계사》(2005)
거미, 불온한 폭식
그녀는 앞발로 풍경들을
제 앞으로 끌어당긴다
불온한 세상을 삼키는 그녀
끈적거리는 풍경을 가득 삼킨 어머니가
젖은 기억들을 나선형으로 토해낸다
상처가 가득 찬 몸은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는다
그녀는 언제나 외로운 각도 위에 서 있다
외로운 나선형의 각도는 그녀의 힘이다
슬픔의 지형도가 흔들린다
도시는 끈적거리는 타액의 힘이다
끈끈한 상처를 건너는 자만이
자신에게 다다를 수 있는 법
날마다 상처를 기어오르는 어머니
고단한 연속무늬로 내가 재생되고 있다
[감상]
폭식증은 습관적으로 먹고 간절하게 토합니다. 따뜻하지도 온순하지도 않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불온한 세상>을 삼키고 토해내 그 <슬픔의 지형도>를 건너는 것입니다. 이 시는 거미의 습성을 통해 어머니와 나, 세상과의 관계를 그려냅니다. 어머니가 나를 낳듯, 거미는 <젖은 기억>을 뽑아냅니다. 고단한 이 세상의 삶이란 날마다 상처를 건너는 것이고, 점액질로 끈끈한 도시는 그 처소가 됩니다. 나선형 거미줄에 걸려드는 그 무엇도 상처의 단백질이 되어 다시 토해지는, 도시인의 쓸쓸한 일상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