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바닥>/ 박옥순/ 2001년《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그녀의 바닥
저 늙은 여자의
거웃 하나 없이 어두운 음부를 곁눈질한다
샤워기는 안중에도 없다
이따금 바가지로 물을 끼얹을 뿐
그때마다 목욕탕 바닥이 철퍼덕 철퍼덕 울어댄다
그녀의 삭정이 같은 몸엔 섬이 하나 있다
한 삶이 떨어져 나온 흔적과 또 다른 생을 잉태했던 곳
언제부턴가 그 아스라한 경계가 혹처럼 불거졌다
깊어진 주름에 가려 배꼽은 보이지 않는다
한때 삶의 오르가슴을 향해 부풀어 오르던 자궁은
이젠 캄캄한 주름의 계곡이다
저 주름들, 나무들이 나이테를 그려왔다
그 푸른 줄무늬 실핏줄처럼 온몸에 번질 때
주름은 비로소 옹송그려 깊어지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중심으로 향할수록 점점 조밀해지는 등고선
기억하는가, 활화산처럼 타오르던 한 생애의 봉우리
그러나 이젠 고통의 분화구만 남은 잊혀진 섬 하나
보아라, 늙은 여자의 슬픈 민둥산
겹주름이 사방연속 무늬처럼 이어진
저 비리고 캄캄한 구멍이
나와 너 그리고 세상이 일어선 곳이다
[감상]
대중목욕탕 늙은 여자의 몸을 들여다보는 시선에서 애잔함이 느껴집니다. 자궁이라는 <섬>을 <캄캄한 주름의 계곡>이나 <고통의 분화구>로 보는 것에서도 묘사의 신선함이 더하고요. 한때 마음의 지도로 들락거렸던 그 뱃길, 연락선이 되고자 했던 사랑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마지막 행이 말해주듯,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섬을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