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 고영민/ 《실천문학》시인선 (근간)
나에게 기대올 때
하루의 끝을 향해 가는
이 늦은 시간,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다 보면
옆에 앉은 한 고단한 사람
졸면서 나에게 기댈 듯 다가오다가
다시 몸을 추스르고, 몸을 추스르고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기대올 때
되돌아왔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흔들림
수십 번 제 목이 꺾여야 하는
온몸이 와르르 무너져야 하는
잠든 네가 나에게 온전히 기대올 때
기대어 잠시 깊은 잠을 잘 때
끝을 향하는 오늘 이 하루의 시간,
내가 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한 나무가 한 나무에 기대어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기대어
나 아닌 것 거쳐
나인 것으로 가는, 이 덜컹거림
무너질 내가
너를 가만히 버텨줄 때,
순간, 옆구리가 담장처럼 결려올 때
[감상]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었음직한 상황을 훈훈한 온기로 묘사한 시입니다. 낯선 이의 어깨를 빌려 잠들 수 있었기에 우리는 고단한 삶이라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특히 무너지는 자신이 타인에게는 버팀목이 된다는 <무너질 내가/ 너를 가만히 버텨줄 때>의 부분에서는 단순한 인정(人情)이 아닌, 편안한 유대감을 느끼게 합니다. <고영민의 시는 따뜻하고 질박하며 소탈하다>라는 해설도 있군요. 사는 게 늘 이런 <덜컹거림> 같았으면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