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지붕에 앉아 빗소리 듣는다》/ 김창균/ 《세계사》시인선
감나무가 있는 집
짖지 못하는 개 한 마리
감나무에 매 놓고
집주인은 어디 갔나.
개들은 빈둥대다
가끔씩 화풀이하듯 밥그릇을 발로 찬다.
발로 차면 으레 소리도 함께
따라가기 일쑤여서
빈집엔 종종 서러운 소리가 나기도 했다.
바람은 맨발로 집구석을 드나들고
홍시를 좋아하던 감나무 집 할머니는
작년 이맘때 돌아가시고
가슴이 뜨거워 견디지 못하는 홍시는
까치들에게 몸을 내주었다.
어떤 날은 너무 몸이 뜨거워
땅에 이마를 쳐박고 떨어지는 날도 있었다.
짖지 못하는 개 한 마리
감나무에 매어두고
밤이 늦어도 주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개들이 혀를 물고 누워
주인을 기다리는 동안
남의 집 지붕을 오래오래 비추며
서있는 등불
홍시 하나.
[감상]
주인이 부재중인 집, 그 적요한 풍경 속 개 한 마리가 눈에 선합니다. 더욱이 <짖지 못하는 개>라는 설정에 쓸쓸함이 더합니다. 사람이 살다 떠난 빈집의 감나무는 감이 달리지 않는다는군요. 감나무 아래 개조차 오줌똥을 누지 않아 더 이상 양분될 것이 없기 때문이랍니다. 감나무는 <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마지막 사력을 다해 <남의 집 지붕을 오래오래 비추며/ 서있는 등불/ 홍시 하나>를 기다림으로 매단 것인지도 모릅니다. <녹슨 지붕에 앉아 빗소리 듣는다> 제목처럼 자연스럽고 소박한 시입니다.